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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가톨릭, ‘아동 성범죄 고해성사 고발 의무화’ 거부

오스트레일리아 조사 당국이 5년 간의 조사 끝에 아동 성학대 주요 가해 집단으로 가톨릭 사제를 지목했다. 당국은 신부의 의무 독신 서약을 중단하고 아동 성범죄와 관련한 고해성사도 신고하라고 권고했으나, 가톨릭계는 거부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왕립 ‘기관의 어린이 성학대 대응에 관한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왕립위원회)가 15일 5년 간의 활동을 마무리하는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시드니 모닝 헤럴드> 등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왕립위원회는 2013년부터 5년간 종교 기관·보호시설·학교·스포츠 클럽 등 ‘기관’에서 벌어진 아동 성학대에 대해 조사했다. 줄리아 길라드 전 총리 시절인 2012년말 처음으로 구성된 이래 4만2041건의 신고를 받았고 8013명의 아동 성학대 생존자를 인터뷰했으며, 이 가운데 2575건을 경찰에 넘겼다. 

 

 

왕립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위원회 기준으로 아동 성학대 피해자에 해당되는 1만5249명 가운데 48.4%인 7382명이 종교 기구에서 피해를 당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1만5249명 중 6875명의 생존자와 인터뷰를 했고, 이 가운데 58.6%인 4029명이 종교 기구에서 성학대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또 이 중 61.4%가 성당이나 학교 등 가톨릭 기구에서 피해를 당했다. 사제와 수사 등 1880명의 가톨릭 관계자가 가해자로 지목됐고, 피해자들이 이들에게 처음 성학대를 받기 시작한 나이는 대부분 10~14살이었다. 패턴은 놀랍도록 유사했다. 피해 아이들은 부모나 성당에 범죄 사실을 말했지만 무시되거나 처벌받았다. 의혹은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가해 성직자들은 다른 교구로 옮겨갔고, 그가 새로 담당한 교구에선 새로 온 사제의 과거를 상상조차 못했다. 그렇게 또 다른 아이들이 성학대 피해자가 되어 갔다.

 

 

왕립위원회는 가장 취약한 시민인 어린이에 대한 기관들의 “심각한 실패” 요인을 분석한 뒤 이번에 발표된 189가지 새로운 권고사항을 포함해 모두 409가지를 권고했다. 특히 가톨릭 교회의 경우 아동 보호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가 ‘교회법’에 있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왕립위원회는 가톨릭계를 향해 바티칸에 교회법 개혁을 촉구하라고 요구했다. 왕립위원회가 가톨릭계에 제시한 20가지 권고안 가운데는 수세기에 걸친 교리를 뒤흔드는 급진적인 내용도 많다. 그 중 아동 성범죄 고해성사에 대한 고발 의무제, 사제의 의무 독신 서약제 폐지 등은 특히 민감하다.

 

 

데니스 하트 멜버른 대주교는 15일 기자회견에서 “가톨릭 주교들과 종교 지도자를 대신해 조건 없이 사과하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한 정의가 실현되도록 우리의 책임을 다한다는 것을 거듭 분명히 밝힌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해성사 비밀 유지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며 수용 여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앤서니 피셔 시드니 대주교 역시 “학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그로 인해 광범위한 커뮤니티에서 가톨릭 교회의 신뢰가 손상됐다는 것을 인정한다”면서도 고해성사 비밀 유지 조항은 바꿀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다. 

 

 

피셔 주교는 사제의 독신 의무 폐지와 관련해서도 “우리는 (아동 성학대가) 독신 성직자를 둔 기관과 독신이 아닌 성직자를 둔 기관 모두가 직면한 문제라는 걸 잘 안다. 우리는 독신을 고수하지 않는 것이 확실한 가정에 안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걸 매우 잘 안다. 아동 성학대는 독신이냐 아니냐와 상관없는 모두의 이슈”라며 반대했다.

 

 

가톨릭 외부에서는 사회적인 압박 탓에 결국 가톨릭계가 교회법을 고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게리 보마 멜버른 모내시대학 사회학 교수는 “교회 안에서 저항이 있겠지만, 변화는 확실히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이 조사 기간에 가장 끔찍한 사건들을 들어왔고 가톨릭 교회는 엄청나게 격력한 반응 이후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안다. 쉽지 않을테고 반발이 거세겠지만 궁극적으론 변화를 목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말콤 턴불 오스트레일리아 총리는 15일 기자회견에서 왕립위원회의 작업은 “사랑의 실천”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보고서에서) 반복적으로 이 말이 반복되는 걸 본다”며 ‘내 얘기를 들어줘서 감사해요.’ ‘나를 믿어줘서 감사해요.’ ‘처음으로 당국자가 내 말을, 내 이야기를 들어줬어요.’를 언급했다. 턴불 정부는 5200만호주달러(약 434억원)의 펀드를 조성해 아동 성학대 생존자들을 돕기로 했다. 아직 신고하지 않은 피해자를 포함해 약 6만여명이 보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 추산된다. 피해자 1인당 최대 보상 금액은 위원회 권고 20만호주달러(약 1억7000만원), 사회서비스부 계획으론 15만호주달러다. 성직자들이 사랑 대신 실천한 사탄의 죄를 세속 정부가 드러내고 위로한 또하나의 역설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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