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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내가 전생에 파계승이었다고?

멜번으로 여행 - 야간 버스(overnight coach)를 타고

정월 중순경밤, 한 달 만에 드디어 시드니와 작별이었다. 이제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시드니에서 멜번까지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은 요금 55달러인 야간버스였다. 이 버스는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10시간을 멈추지 않고 달렸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다시 멜번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토키(Torquay)를 거쳐 패럽패럽(Paraparap)이라는 조그마한 촌(Town)에 이르렀다.

홀로 사는 불교신자, 질리언

새로 만난 주인 질리언(女)은 이혼 후 홀로 사는 불교신자였다. 

아름다운 ‘잉글리시 가든’ 안에는 정신과 육체를 정화하고 명상(meditation)하는 피정(避靜)센터(retreat center)를 운영하고 있었다.

우퍼는 그녀가 사는 집 바로 옆에 별채(그녀는 ‘flat’이라고 일렀다)에 머물도록 되어있었다. 현대식이고 아주 깨끗한 편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예전 로완의 집과는 천양지차라 할까?



부처의 모습이 보인다. 필자도 어렴풋이 ^^ 

모든 농가엔 다음과 같이 빗물을 받아 모아두는 물탱크가 있다. 

60대 중반의 그녀는 자그마한 수정을 가만히 내 앞에 놓고는 나의 영적인 에너지를 알려준다며 물과 불, 흙의 힘에 빗대어 나의 성격·인격·체질을 설명해주었다. 당시로선 전혀 이해가 되지도 않았고 별로 공감이 되지 않는, 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었다. 

▲식사시간
또한 그녀는 나의 전생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얘길 해주었는데, 내가 다섯 바퀴 전생에 일본 승려였단다. 그것도 파계한 승려라나…! 더~욱 믿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부엌 역시 꽤 깨끗하고 깔끔한 편이었다. 딱 하나만 빼면 말이다. 때가 여름날이라서 어디선가 몰려든 개미떼들이 음식을 보관하는 벽장으로 4차선을 내어 들끓고 있었는데, 그녀가 하는 것이라곤 그것들을 빗자루로 살살 쓸어 담아 바깥뜰에 버리는 것이 전부였다.

어차피 조금 후에 그놈들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 방문하게 되어 있었다. 보기 답답해서 살충제로 개미가 다니는 길을 끊어버리려 했더니, 살생을 원하지 않는다며 날 나무라고는 내버려두게 하는 것이었다. 불교신자다웠다.

하루는 그녀가 어디선가 개미를 쫓는다고 약초를 가져와 개미가 다니는 줄에 덮어두었는데,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녀는 아침·저녁으로 도보 명상(Walking meditation)이라고 하는 것을 행하고 있었다. 

나는 별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나, 핫무트(나와 함께 온 독일인 우퍼)는 처음부터 이곳에 온 이유가 명상에 대한 관심이었기에 꾸준히 참여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내게 아침·저녁으로 명상수련을 할 때마다 참여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나는 딱 한번 해보고는 내키지 않아 그만두었다.



문화의 차이를 느끼다


한번은 내가 식사를 할 때, 질리언은 “쩝쩝 씹는 소리를 내는 것은 작지 않은 결례”라며 타이르듯 설명을 해주는 것이었다. 뜨거운 커피나 차를 마실 때도 후루룩하고 마시는 소리를 내는 것은 역시 그들에겐 예의에 ‘몹시’ 어긋난 행위라는 것이다. 문화적 차이에 대한 한 가지 학습을 한 셈이다. 하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아 그 뒤로도 꽤 여러 번 더 혼이 난 것 같다.

본격적인 우퍼 되기

이곳에서부터는 우퍼로서 제대로 된 일을 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일은 잔디 깎기나 담쟁이 넝쿨을 전기톱으로 잘라 더미로 만들어 태운 일, 주차장 터를 닦은 일, 그리고 정원에 길을 내는 일 등이 있었다.

대개는 처음 하는 일이었지만 숙련된 독일인 친구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하지만 나도 알만큼 비교가 많이 되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나를 바짝 구워버릴 듯한 쨍쨍한 날씨였다.
 

▲정원을 손보던 중
이곳에서의 뻑적지근한 1주일이 되어갈 무렵 일요일, 그 유명한 ‘그레이트 오션로드’(Great Ocean Road)가 여기서 가깝게 위치한단 사실을 알게 되고는 질리언에게 하루 데려다 줄 수 없을까 사정을 했다. 


하지만, 곧바로 반대에 부딪혔고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몇 번 더 사정을 했다. 하지만 내 집요한 설득에 그녀는 기분이 상한 듯 했다. 그때는 내가 참 고약했던 것 같다. 

여기서 우프에 대해 개념을 새로이 알게 됐는데, 우프는 주5일, 주6일 그러한 개념이 없다는 것이었다. 매일 하루 4~6시간가량 일하는 것으로 그날의 숙식을 해결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때는 이것도 모르고 질리언을 오히려 야속하게 생각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레이트 오션로드’는 200Km가 훨씬 넘는 거리로,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다녀오려면 하루 일정은 조금 무리였다. 되돌아보면 너무 괘씸한 요구를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와 같은 일이 있었으니 그녀에겐 내가 그리 달갑지 않은 우퍼였다고나 할까? 질리언은 이와 더불어 종종 일을 시키곤 나에게 사려 깊지 않다(thoughtlessness)고 꾸짖었는데, 당시엔 참 맘에 들지 않는 말이었지만,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바가 있다. 

토키(Torquay)로의 소풍

그러던 중 질리언은 우리가 주차장 터를 닦는 일과 담장 없애는 작업을 완벽하게 해주어 매우 흡족해 하였다. 

그리하여 그녀의 호의로 우리는 토키의 아름다운 해변으로 소풍을 가게 되었다.

토키는 아름다운 해안가와 물결이 세어 서핑의 천국으로 유명했다. 

지금까지 가본 해변 중에 첫째 갈만큼 아름다운 바다였으나 햇볕이 워낙 강렬해 선글라스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돌아오는 길에 질리언은 한 공원에서 방목하다시피 키우고 있는 캥거루 떼를 구경시켜주었는데, 그때가 바로 호주에 와서 처음으로 캥거루를 보는 것이어서 마냥 신기했다.
 


▲토키의 아름다운 풍경
다음 목적지로 떠나기

2주일 남짓 지날 무렵, 핫무트와 나는 다음 여행을 꾸리게 되었다. 떠나면서 나는 질리언의 딸이 생일이라는 얘기를 알게 되었고, 보지도 못한 그녀의 딸에게 생일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앨범을 마련했다. 

그 동안 내가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게 맘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녀의 딸은 물론, 그녀의 마음도 흡족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nice move(재치 있는 처신)’이었고, 그때 그녀의 환한 얼굴이란…. 역시 선물은 누구에게나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때론 그녀의 핀잔이 못마땅하기도 하였으나 떠나려니 아쉬움이 나는 건 인간의 얄팍한 심리란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작별을 뒤로 하고, 전에 그렇게나 가려고 했던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향해 힘찬 걸음을 내딛게 되면서 난 이제 본격적으로 만남과 헤어짐의 숱한 반복을 겪겠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독일인우퍼 핫무트와 필자
더불어 이제는 가족구성원이 제대로 갖춰진 그런 곳에서 우프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함께 일었다. 그때까진 사람도 보기 힘든 곳에서 호스트, 외로움과 적적함을 벗 삼아 지낼 만큼 내공이 충분치 못했던 탓이다. 

핫무트는 그레이트 오션 도중에 있는 ‘아폴로 베이’(Apollo Bay)에서 바로 1박을 하기로 결정하였고, 나는 ‘론’(Lorne)’이라는 곳에서 오후시간을 보낸 후, 아폴로 베이에서 묵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핫무트와도 일단 작별을 하게 되었는데…. 잠시 후 벌어질, 이후 내 호주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 ‘크나큰 불행’의 임박을 난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서용석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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